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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건의령

잔비 2010. 12. 7. 07:43

 2010. 3. 28. 백두대간 남진 11구간 ( 댓재 - 황장산 - 환선봉 - 덕항산 - 푯대봉 - 피재 )

누구랑 : 나랑

어디로 : 댓재(03:55) - 황장산(04:15) - 1069/1059봉(05:08) - 큰재(05:44) - 자암재(06:50) -

           헬기장 조식(07:05-07:40) - 환선봉(08:00) - 예수원갈림길(08:32) - 덕항산(08:42) - 구부시령(09:05) -

           푯대봉삼거리(11:45) - 한의령/건의령(12:07) - 노루메기(14:07) - 삼수령/피재(14:30)

산행시간 : 10시간 35분

산행거리 : 26.1 km + 접속거리 0 km  (대간 누적거리 226.98 km + 대간 접속거리 16.7 km = 233.68 km )

날씨 : 맑음 ( 등산로에 눈은 많이 있었으나 바람도 없고 산행하기 좋은날)

 

남쪽지방은 봄 소식이 한참인데 여기는 아직도 눈세상이다. 오늘도 눈길때문에 고생길이 눈앞에 보인다. 오늘 산행은 고도표를 보면 알수 있지만 톱니처럼 생긴 수많은 봉오리들이다. 계속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반복해야 하는 구간이다.

 

댓재에서 황장산은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한겨울이 아니라 눈이 많이있지만 얼어있지 않고 밟으면 쑥쑥들어간다. 황장산을 지나  큰재까지 계속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팀원들이 쉬지도 않고 큰재를 지나친다. 큰재를 지나 번천국유임도가 나오자 선두팀이 후미를 기다리면서 잠시쉰다. 번천국유임도를 지나자 고냉지채소밭이 나오기 시작한다. 팀원들은 알바를 하지 않기 위해 줄을 서서 이동을 한다. 강호동이 1박2일에서 비박을 했다는 나무도 나오고 대간팀들이 알바를 많이 한다는 물탱크가 나온다. 멀리 광동댐 이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귀내미골도 눈에 들어온다.

 

환선굴로 내려갈수 있는 자암재를 지나 헬기자에서 조식을 한다. 조식은 촛불형님이 싸가지고 온 추어탕을 먹는다. 배도 고프고 술도 땡기고 잠시 쉬면서 먹는 산행의 아침은 임금님 수라상 저리가라다. 조식을 마치고 환선봉에 오른다. 환선봉 오르는 길에는 로프로 유도선이 연결되어 있다. 환선봉에서 환선굴 방향으로 멋진 풍경이 눈에는 보이지만 카메라로는 잡지 못했다. 잡목이 많아 안타깝고 절벽이 있어 위험하기도 하다.

 

덕항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구부시령으로 향한다. 구부시령은 아홉남자를 모셨다는 안타까운 여인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구부시령을 지나서 부터 힘이 빠지고 지치기 시작하는 구간이다. 계속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푯대봉 못미쳐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속이 좋지 못하다. 등산로 옆 나무 옆에서 시원하게 큰 볼일을 보고 푯대봉으로 오른다. 푯대봉오르는데 속을 비우니 왜 그리 개운한지... 푯대봉삼거리에서 베낭을 벗어 놓고 푯대봉에 갔다 온다.

 

푯대봉에서 건의령에 내려오자 12시가 넘어간다. 시장기를 때우기 위해 베낭에 있던 전과 과일을 안주삼아 술을 한잔 한다. 건의령의 조금 지나 전망이 좋은 곳에서 우측마을을 보면 한반도 모양의 지역이 나온다. 내보기에는 우측산과 우측마을이 모두 한반도 모양으로 보인다. 우연히 촬영했는데 나중에 유명한 곳이란걸 알았다.

 

건의령에서 피재까지는 6.4km다. 작은 봉오리들을 넘나들다 보니 어느새 노루메기가 나온다. 이제 피재까지는 0.8km 살것같다. 숨한번 크게 쉬고 가보니 삼수정이 나오고 반가운 버스가 보인다. 10시간35분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피재에 있는 가게에서 막걸리에 어묵을 먹는데 너무 맛있게 먹었다.

 

택백으로 이동하여 보명목욕탕(033-552-3012)에서 샤워를 하고 또와식당(033-552-1447)에서 맛있는 생태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목포로 이동한다. 난 이동하면서는 언제나 처럼 잠에 빠져든다.

 

 

^ 산행지도

 

^ 고도표 

 

^ 백두대간 댓재 표지석... 

 

고지도에는 “죽치(竹峙)“로 표기하였는데 이 것은 ”대“를 대나무를 뜻하는 ”竹“의 훈(訓)을 빌려 쓴 것으로 보인다. 

대동여지도 등에 댓재의 서쪽에 죽현전, 죽령현이 표기되어 있고, 고구려 때는 죽현현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경덕왕 때 “죽령현”으로 개칭 되었다.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 까지는 죽현~죽령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죽치”로 불렸고구전으로 전해 져 온 우리말은 "대고개→댓재"이다.

 

^ 등산로 입구 

 

 

^ 댓재에서 황장산으로 올라가는 길.... 

 

^ 황장산 정상... 

 

^ 이정표... 

 

^ 1069/1059 봉 

 

 

 

 

^ 황장산에서 큰재로 가는 길에... 

 

^ 큰재 이정표...

 

큰재는 삼척시 신기면 고무릉리와 태백시 하사미동을 이어주는 고개로 물물교환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 큰재를 지나서 나오는 임도... 

 

 

 

 

^ 대간길이 뭐라고 새벽부터 힘들 길을 나선 목포산꾼들.... 

 

^ 강호동이 1박2일 촬영시 비박했다는 나무(우측 나무)를 지나며... 

 

 

 ^ 1059봉/지극산, 물탱크.. 우측으로 지나감...

 

지극산은 고랭지채소밭 개발로 대머리가 된 산으로 대간꾼들에게 알바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정상부에 있는 물탱크는 대간꾼들에게 길라잡이를 해 주는 고마운 놈이다.

 

 

 

 

^ 고냉지채소밭을 지나가고 있는 팀원들...

 

^ 대간길 아래로 보이는 광동댐 이주 마을 귀내미골...

 

귀내미골 현재 광동댐 이주민의 거주지를 이름이다. 정감록에 이르기를 귀내미골이 이상향(무릉도원)으로 가는 길목이라 했다. 귀내미골은 우귀(소귀)의 이두표기인 牛耳嶺(토정 이지함은 牛耳間으로 보았음)으로 되었다가 "귀넘이" →"귀내미"로 변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기면 대이리와 하사미동 귀네미골을 이어주는 고개 자암재와 장암재 등 두 개의 지명을 가지고 있어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그러나 환선굴이 있는 대이리쪽에 "장암목이"라는 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암재"의 표기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 자암재에서 웃자...

 

^ 자암재 모습....

 

 

 

^ 조식장소인 헬기장...

 

 

^ 헬기장부터는 환선봉까지 유도선이 있어 산행을 길잡이 해준다...

 

^ 환선봉 오르는 길...

 

 

^ 환선봉에서 웃자..

 

^ 환선봉에서 환선굴 방향 계곡...

 

^ 나무 사이로 걸어왔던 대간길이 보인다...

 

 

^ 덕항산으로 가면서...

 

 

 

^ 예수원 갈림길...

 

^ 덕항산 정상 모습...

 

 

덕항산은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위치하고 있으며, 약12Km 길이의 무릉천이 이 산에서 동으로 계곡을 따라 흘러 오십천에 합친다. 덕항산은 산보다도 "환선굴"로 더 유명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환선굴을 찾는다. 그러나 덕항산은 산세 또한 수려하다.  동남으로 펼쳐지는 병풍암, 거대한 암벽,  칼로 벤 듯한 암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우뚝 솟은 촛대봉 등 산세도 수려하고 특이한 절경을 이루고 있다.

 

^ 덕항산에서 웃자...

 

^ 덕항산을 지나치며 나무가지에 눈이 제법 많이 싸여있다...

 

 

^ 구부시령 방향으로 가면서.... 3월말인데 왠 눈이 이리 많은지...

 

 

옛날 아주 먼 옛날 이 고개마루에는 주막집이 한 채 있었다. 주막집에는 금슬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 하루 아침에 과부가 된 여인은 그렇게 한동안 홀로 외로이 살다가 이 재를 넘어가던 한 남정네와 눈이 맞아 짝을 이뤄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또 남편이 죽었다. 홀로 된 여인은 또 새 남편을 얻었다. 그 남편이 또 죽었다. 그녀는 또 새 남편을 들였다... 이렇게 해서 이 기구한 운명의 여인은 아홉 명의 남편을 모시게 되었다. 그 때부터 이 재를 아홉 구,지아비 부,모실 시,재 령을 써서 구부시령[九夫侍嶺]이라고 불렀다.

 

^ 구부시령에서 웃자...

 

 

^ 1055봉 웃자의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ㅋㅋ

 

^ 대간길을 떡하고 버티고 있는 나무혹...

 

^ 오늘 대간길은 오른쪽은 능선, 왼쪽은 낭떨어지... 그리고 종일 눈길...

 

^ 한의령 3.0km 이정표로 내려오는 급경사 내리막길...

 

^ 이정표...

 

 

^ 푯대봉삼거리로 오르는 길...

 

^ 푯대봉삼거리... 푯대봉은 뒤로 100m

 

 

^ 푯대봉에서 웃자...

 

^ 푯대봉에서 한의령으로 내려가는 길...

 

 

태백시와 상사미동과 도계읍 고사리를 넘다드는 고개 

건의령과 한의령은 같은 지명을 두 개의 지명으로 부르는 것으로 異名異地가 아니고 異名同地이다

 巾 衣嶺은 고려의 왕인 공양왕이 이성계에 납치되어 원주.고성 강릉을 전전하다 최후의 유배지인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정착하나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재에서 피살되자 그를 모시던 신하들이 시신을 거두어 고돌치에 장례를 치루고 조선군의 칼날을 피해 도마재를 지나 건의령에 도착하게 된다.

 여 기에서 그들은 망국의 한을 통곡하며 관복과 관모를 벗어서 나무에 걸어두고 피재와 싸리재를 넘어 두문동에 숨어들어 杜門不出하니 개성 땅 만덕산 서쪽골짜기 두문동재에 이은 두 번째 두문동이 되니 나라잃은 서러움 오즉했을까?후세인들은 그 들이 살았던 마을을 杜門洞이라 하고 뒷 산의 고개를 두문동재라 부른다.

 

^ 한의령/건의령 모습...

 

^ 한의령에 있는 백인교군자당...

 

백인교 군자당은 고려말 재상이 건의령에서 백사람에게 글을 가르쳐 그 고마움에 마을 사람들이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 한의령은 자동차가 다닐수 있다...

 

^ 한의령 지나 대간길에 있는 바위...

 

^ 한의령 지나 우측으로 있는 대한민국 지도 모습의 산... 무심코 찍었는데 나중에 설명을 듣고 암...

 

 

 

 

 

 

 

^ 한의령을 지나 삼수령으로 가면서...

 

^ 삼수령 이제 3.0km 남은 이정표...

 

 

 

 

^ 마지막봉 삼각점...

 

 

 

^ 노루메기, 삼수령 0.8km 남음...

 

목루목~노루목이~노루메기로 변형되었다. 한자로는 노루장(獐) 목덜미항(項)으로 쓰며 풍수지리에서는 노루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여 노루메기(노루가 지나다니는 길목 또는 산이 막히는 막다른 곳)라 한다.

 이러한 지명을 전국에 걸쳐 여러 곳이 있으나 대부분의 표기는 “노루목”이나 “노루목이” 또는 장항(獐項) 등으로표기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노루메기(이 지방 사투리로 보임)로 표기하고 있다.

 

^ 임도를 지나 다시 산길로...

 

^ 삼수정...

 

 

 

 

태백시 적각리와 상사미동을 이어주는 고개로 해발920m 이다. 이 고개는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지 안하 역사속에 파묻혀 있던 곳이었으나, 한강의 발원지가 발견(검룡소)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현재 35번 국도가 2차선으로 포장되어 전선과 태백을 이어주는 교통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금대봉아래에서 발원하는 한강물줄기는 오대천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와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루고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함께 한강을 이루어 서해바다에 합수된다.

또한 적각리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오십천을 따라 삼척의 동해바다로 합수되며 함백산에서 발원하는 낙동강의 물줄기는 낙동정맥을 따라 몰운대의 남해바다에 합수되니 사람들은 피재를 삼수령(三水嶺)이라 이름지어 부른다.

 피재의 어원은 삼척사람들이 난리(전쟁)를 피해 적각동은 넘어  황지지방으로 피난(避難)한 고개라 하여 피재라 한다. 피재라는 지명이 붙기전에는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고독한 산이란 뜻에서 고적령(孤跡嶺)이라 했다.

 

 

^ 삼수령/피재에서 웃자...

 

 

 ^ 늦은 중식으로 생태탕을 먹은 또와식당